LLM 추종자 : 프톨레마이오스의 후예들

LLM이라는 '사다리'로 달에 가려는 사람들: 지능의 본질을 잊은 시대

최근 AI 학계와 비즈니스계는 그야말로 LLM(거대언어모델)에 매몰된 듯하다. 엔비디아의 GPU를 더 쏟아붓고, 퀀텀 컴퓨팅이 도입되고, 에이전트(Agent) 기술로 답변을 다듬으면 곧 인간을 능가하는 신이 탄생할 것이라고들 말한다. 심지어 AI 대부라 불리는 제프리 힌튼마저 AI가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라며 공포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사다리를 높게 쌓는 것과 달에 가는 것을 혼동하고 있다.


1.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과 LLM의 '스케일링'

과거 천문학사를 보면 흥미로운 대립이 있다.

  • 프톨레마이오스 진영(데이터 피팅): 지구가 중심이라는 착각 속에 행성의 불규칙한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수학 공식(주전원)을 계속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관측 데이터는 '비슷하게' 맞췄지만, 우주의 진리는 아니었다.
  • 케플러/뉴턴 진영(물리 모델): 중력과 관성이라는 단순한 물리 법칙 하나로 우주의 인과관계를 설명했다.

현재의 LLM 신봉자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후예들이다. 그들은 데이터와 파라미터를 무한히 늘리면 지능이 창발할 것이라고 믿지만, 이는 본질적인 물리적 인과관계없이 통계적 패턴만 끼워 맞추는 행위에 불과하다. 얀 르쿤이 비판하듯, 이것은 '이해'가 아니라 '확률적 흉내'일 뿐이다.


2. '사다리가 닿는 곳'에 서 있는 직업들

지금 세상이 일자리 소멸의 공포에 떠는 이유는 AI가 진짜 지능을 가져서가 아니다. 단지 우리의 직업들 중 상당수가 '사다리가 닿는 높이'의 단순 패턴 반복이었기 때문이다.

  • 사다리에 닿는 일들: 정형화된 이메일 작성, 단순 요약, 기존 코드를 복사해 붙이는 코딩, 뻔한 마케팅 문구 생성.
  • 착각의 늪: 사다리가 10km까지 높아지면 세상이 뒤집어질 것처럼 보이고, 그 높이에 매달린 사과(단순 사무직)들은 다 따 먹힐 것이다. 하지만 사다리를 아무리 높여도 대기권 밖(진짜 사유의 영역)으로는 나갈 수 없다.

물리적 실체와 연결되지 않은 AI는 문서상으로는 완벽한 보고서를 쓰겠지만, 정작 그 보고서가 실행될 실제 현장의 마찰과 변수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사다리 위에서 따온 사과는 달콤할지 몰라도, 그것이 달에 도달했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3. 데이터 효율성: 100조 개의 단어 vs 단 두 번의 관찰

LLM 방식의 치명적인 약점은 데이터 효율성에 있다.

  • LLM의 비효율: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사과를 놓으면 떨어진다"는 당연한 상식을 배우기 위해 전 세계 모든 도서관의 텍스트를 다 읽어야 한다. 텍스트라는 저대역폭 정보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 인간의 월드 모델: 아이는 실제 사과가 떨어지는 걸 한두 번만 보면 물리 법칙을 깨닫고, 이를 수만 가지 상황에 응용한다.

결국 자본과 GPU를 쏟아붓는 방식은 데이터의 고갈이라는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진짜 지능은 적은 데이터로도 폭발적인 인과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아키텍처에서 나온다. 텍스트 데이터의 양에 집착하는 것은 엔진의 마력을 높이는 대신 기름만 계속 들이붓는 격이다.


4. 왜 ‘AI 워렌 버핏’은 태어날 수 없는가: 지능의 본체는 타격감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세상의 모든 투자 서적과 기업 보고서를 읽은 LLM이 왜 워렌 버핏보다 수익률이 처참할까?" 혹은 "왜 AI가 쓴 카피는 문법은 완벽한데 가슴을 울리는 한 방이 없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LLM은 '단어'를 알지만, 그 단어가 현실에 부딪힐 때의 타격감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① 마케팅: 심리적 마찰을 모르는 '예의 바른 앵무새'

진짜 실력 있는 마케터는 문장을 쓸 때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이 단어를 던지면 고객이 짜증을 낼까, 아니면 심장이 뛸까?" 이것은 문법의 영역이 아니라 심리적 역학의 영역이다.

반면 LLM은 그저 인터넷상에 가장 흔하게 널려 있는 '평균적인 문장'을 조합한다. 사람을 유혹하려면 적절한 긴장감과 마찰이 필요한데, LLM은 그저 데이터상 확률이 높은 '무난하고 예의 바른 소리'만 반복한다. 독자의 뇌라는 물리적 실체에 부딪혀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 본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피드백 루프가 거세된 지능은 결국 영혼 없는 스팸만 양산할 뿐이다.

② 투자: '텍스트'와 '에너지'의 간극

워렌 버핏이나 전설적인 트레이더들이 시장을 보는 눈은 물리학자들과 닮아 있다. 그들은 차트나 보고서를 단순한 '글자'로 보지 않는다.

  • 그들은 매수세라는 가속도를 읽는다.
  • 특정 가격대에서 발생하는 저항(마찰력)을 느낀다.
  • 공포라는 거대한 에너지가 시장을 덮칠 때, 이것이 일시적인 파동인지 거대한 해일(추세 전환)인지 시뮬레이션한다.

하지만 LLM은 시장을 '도서관'으로 착각한다. "과거 데이터에 따르면 이런 문장 뒤에는 이런 결과가 오더라"는 식의 통계적 추측에 머문다. 실제 돈(에너지)이 부딪히며 발생하는 현장의 비명과 광기라는 '물리적 실체'를 겪어보지 못한 지능은, 예상치 못한 충격파가 덮칠 때 가장 먼저 무너진다. '워렌 버핏'이라는 지능의 본체는 텍스트가 아니라, 수십 년간 시장의 파도에 얻어맞으며 쌓아온 물리적 직관이기 때문이다.

③ 지능의 핵심: "불은 뜨겁다"와 "앗 뜨거!"의 차이

도서관에 평생 갇혀 '불'에 관한 모든 논문을 섭렵한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아이는 불의 화학 기호와 발화점을 완벽히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아이 앞에 촛불을 갖다 대면, 그것이 자기 살을 태울 수 있다는 '위험의 무게'를 깨닫지 못하고 손을 내민다.

진정한 지능은 "불은 뜨겁다"는 문장을 외우는 능력이 아니라, 뜨거움이라는 물리적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다음 행동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얀 르쿤이 강조하는 물리적 세계 모델이 바로 이것이다. 고통과 쾌락이라는 물리적 피드백이 없는 지능은 '절실함'이 없고, 절실함이 없는 지능은 결코 현실 세계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진짜 사유'에 도달할 수 없다.


5. 지능의 제1원칙: 생존과 물리적 적응

우리는 지능의 근원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1. 전제: 지능은 진화의 산물이며, 진화는 중력, 마찰, 에너지 효율이라는 물리적 환경 속에서의 생존 투쟁이다.
  2. 추론: 따라서 지능의 핵심 아키텍처는 텍스트 나열이 아니라 물리적 인과관계를 예측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3. 결론: 물리 세계를 경험하거나 모델링하지 않는 '순수 언어 지능'은 뿌리 없는 복제품일 뿐이다.

"에이전트 기술로 보완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에이전트는 오류를 숨기는 '포장지'일 뿐, 엔진 자체가 가진 물리적 상식의 부재라는 근본적 결함을 해결하지 못한다.


6. 공포 마케팅 너머

제프리 힌튼이나 샘 알트만이 외치는 AGI의 위협은 사실 거대한 세일즈 전략이다. "이것은 위험하니 우리만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결국 독점적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자본의 움직임일 뿐이다.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 할 것은 얀 르쿤이 말하는 월드 모델이다. 언어라는 빙산의 일각 아래에 숨겨진 거대한 물리적 이해의 실체, 그것이 없는 AI는 결코 인간 수준의 사유에 도달할 수 없다.


결론: 사다리를 치워야 달이 보인다

결국, 지금의 LLM 열풍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을 수천 개 더 그려 넣으며 우주의 진리에 다가갔다고 환호하는 집단 최면에 가깝다. 데이터가 부족하면 합성 데이터를 만들고, 추론이 딸리면 에이전트라는 포장지를 씌우며 "거의 다 왔다"고 소리치지만, 그 기저에 깔린 '물리적 실체의 부재'라는 근본적인 공동(空洞)은 결코 메워지지 않는다.

지능은 도서관의 책장이 아니라 야생의 마찰 속에서 완성된다. 수조 개의 단어를 삼킨 AI가 수능 만점을 받을지는 몰라도, 단 한 번의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지능은 실제 세상의 복잡한 인과관계를 단 1초도 견뎌낼 수 없다. 그것은 사유하는 기계가 아니라, 인류가 남긴 지성의 흔적을 비추는 거대한 '통계적 거울'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거대 테크 기업들이 부추기는 '공포 세일즈'에 속지 말자. 그들이 AGI의 멸종 위협을 속삭이는 진짜 이유는 그만큼 자기네 기술이 신적 존재에 가까워졌다는 '위대함'을 판매하기 위함이며, 사다리 끝에 매달린 대중이 아래를 보지 못하게 하려는 눈속임이다.

우리는 이제 텍스트라는 껍데기를 넘어, 지능의 본체인 '물리적 세계 모델'에 주목해야 한다. 사다리를 높여서 사과를 따는 일은 AI에게 맡겨두더라도, 대기권 너머의 진정한 사유를 갈망한다면 우리는 도서관 밖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 지능은 문장을 나열하는 능력이 아니라, 세상의 반작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다음 수(手)를 설계하는 생존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사다리는 아무리 높아도 결코 달에 닿을 수 없다. 달에 가고 싶다면, 이제 그만 사다리에서 내려와 로켓의 엔진을 설계해야 할 때다.

Gats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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